실손보험 청구 과정을 간소화하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어 향후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4000만 명에 달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권고한 지 14년 만인 지난달 15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이하 실손 간소화법)’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지금은 실손보험을 청구할 때 병원에 진단서와 진료비 세부내역서, 영수증 등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 서류 발급을 깜빡해 병원에 다시 받으러 가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병원비가 소액이면 귀찮아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기도 한다.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환자가 챙기지 않고 보험사에 자동 전송하도록 하는 내용의 실손 간소화법이 14년 만에 처음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법은 실손보험 가입자가 병원에 요청하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병원 등 의료기관이 전산으로 바로 보험사로 전송하도록 하는 것이다. 법의 최종 통과까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가 남았지만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14년 만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초읽기

실손보험 간소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소비자 편익 증진을 위해 청구 간소화를 권고한 지 14년 만에 시행을 눈앞에 둔 것이다.

현재는 실손보험을 청구하려면 환자가 진료 영수증, 진단서, 진료명세서 등 종이 서류를 병원에서 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이와 같은 복잡한 절차로 인해 보험 가입자들이 청구하지 않는 실손 보험금이 매년 2000억~3000억 원에 달하며 병원과 보험사의 행정력이 불필요하게 낭비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실손보험 미청구액은 2020년 2280억 원, 2021년 2270억 원, 지난해 2860억 원으로 연평균 2470억 원에 달한다. 절차가 번거로워서 진료비가 소액이면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0년 손해보험사 14개사 기준 실손보험 청구 방식을 살펴보면 보험사 애플리케이션과 홈페이지를 통한 청구가 33.7%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노년층의 경우 설계사‧지점 방문 등 대면(27%)과 팩스(26.6%)를 통한 청구를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타(콜센터, 우편 등)는 12.7%였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되면 이 같은 수고로움이 사라질 전망이다. 클릭 몇 번만 하면 진료비 몇천 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 셈이다.

보험업계는 매년 1억 건에 달하는 실손보험 심사에 드는 서류작업이 상당한데다 비용 부담도 크다고 토로해왔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소비자‧보험사‧의료계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보험사 ‘찬성’ vs 의료계 ‘반대’ 이유는

보험업계는 수기로 입력하는 보험금 청구서류의 처리 비용과 인력이 줄어들고, 보험소비자의 편익이 증진될 것 등의 이유로 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실손 보험금 청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가 제출한 종이 문서를 받아 심사 이후 전산에 입력하고 보관하는 단순 업무가 큰 비효용을 초래한다.

보험사들은 실손 청구 간소화를 통해 보험금 심사 효율화, 서류 보관 비용 절감 등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도 대량의 종이 문서 발급으로 원무과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있어 청구 전산화가 필요한 실정이다.

금융권 시민단체도 보험료를 낸 만큼 보험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보험금 청구 절차가 복잡해서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소비자 기만이라며 시급히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간소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연구원도 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이뤄질 경우 실손보험 계약자의 불편 및 보험금 미청구건이 줄어들어 보험 소비자의 권익이 증진되고, 서류 처리에 따른 요양기관 및 보험회사의 행정 부담이 줄어들어 국가 자원이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법이 통과되면 의료데이터 전송 거부 운동을 벌이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검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중계 기관이 비급여 진료 정보를 축적해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해왔다. 환자의 병력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는 오히려 전산화를 통해 정보 유출 리스크가 경감된다고 설명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료계도 국민의 편익을 위해서 전향적인 자세로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기존에 제출하던 서류 형태가 아닌 암호화된 전산 데이터로 제공된다면 개인정보 보호도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맞섰다.

의료계는 환자 진료 정보가 중계 기관에 쌓이면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누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가 반대하는 진짜 속내는 결국은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급여 진료비가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처럼 투명해지면 정부와 보험사로부터 비급여 진료비 인하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손보험 청구가 편해지면 당장은 보험금 청구가 늘어날 수 있지만 병원이 지나치게 비싼 비급여 진료를 과도하게 제공하지 못하게 압박하는 효과가 있어 과잉 의료쇼핑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올리는 대다수 병원은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정무위를 통과한 실손 간소화법에서는 의료계 반발을 의식해 청구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환자 정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다수 보험 가입자의 편익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종이로 하던 것을 전자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청구 간소화가 시행되면 번거로워서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았던 가입자들이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보험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송대행기관이 자료를 집적하지 못하도록 개정안에 명시돼 있고 목적 이외의 사용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보 유출 우려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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